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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린상고, 고려대 출신의 인기 야구선수에서부터 유명 프로야구 해설가, 우리 히어로즈 단장, 대학교수, 대한야구협회 이사까지. 그를 소개하는 직함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숱한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려 했던 그의 끈기와 노력 때문이라는데요. 용기와 열정의 Energy, 공감과 소통 Emotion, 노력과 결실 Effort! 이 세 가지의 핵심가치를 이상향으로 추구하는 에듀윌에서 노력의 삶을 몸소 실천하며 살아온 그가 노력과 성과 ‘Effort’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박노준 해설위원의 왼손과 오른손의 모양은 다릅니다. 고교시절 왼손 투수로 활약한 그는 투심 패스트 볼을 던지기 위해 왼손 두, 세 번째 손가락을 찢어질 듯 벌리며 연습 또 연습했죠.

 

“제 왼손, 꼭 곰 발바닥 같지요? 은퇴한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영광의 상처랍니다. 선수들의 손을 보면 굳은살 없는 친구들이 없어요. 야구 방망이를 세심하게 다루기 위해 뭉친 굳은살을 갈면, 연습으로 어느새 또 굳은살이 뭉치고 하니까요. 노력이 없는 성과는 없답니다. 수십만 번의 연습이 곧 실력으로 나타나는 곳이 바로 프로의 세계죠.”

 

 

선린상고 시절 많은 인기를 얻은 박노준 해설위원은 무리한 등판으로 프로 입단 후 투타를 겸업하다 외야수로 전향했습니다. 이후 해태와 쌍방울에 트레이드 되는 등 부진을 겪었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1994년 골든 글로브를 받았죠. 하지만 기쁨도 잠시 무릎 부상으로 1997년 현역에서 은퇴하게 된 그는 역시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늘 도약하기 위한 준비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죠.


 

“여러 번의 부상을 겪는 동안, 많은 불안감을 느꼈어요. 프로야구 선수는 수명이 짧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고, 두려움을 갖는 대신 미래를 준비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대비했죠. 그래서 선수 생활을 하며 틈틈이 영어 공부도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은퇴 후 미국 유학을 가겠다는 욕심이 있었으니까요. 1997년 부상으로 이젠 더 이상 선수로서의 제 열정을 발휘할 없게 되었을 때, 저는 주저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났답니다. 최선을 다했기에 더 이상 아쉬움도 남지 않았지요.”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프로야구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게 된 그. 마흔의 늦은 나이였지만 뜨거운 학구열로 다섯 번의 실패 끝에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어엿한 교수로서 강단에도 서고 있습니다.


“저는 노력은 절대 배반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야구선수로 활동하며 몸으로 습득한 진리죠. 여러분도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길 바라요. 현재 내 일에 후회 없이 열정을 다하고 있는지를 말이죠. 스스로 ‘그렇다’라는 말을 할 확신이 들 때 성과는 따라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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